대한민국 사람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도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요. 객관적 통계나 유명세가 아니라 '내가 들어본 적이 없는가'라는 주관적 기준으로 선택한 산청군과 합천군. 이 두 도시는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경계에 위치하며, 여수 밤바다나 광양 불고기처럼 귀에 익은 특산물도, 학교 수업에서 들어본 역사적 배경도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익숙하지 않음 때문에, 이번 여행은 더욱 선명한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산청군, 밤 10시에 꺼지는 도시의 리듬
산청군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반. 도시 전체가 이미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파트 불빛조차 거의 보이지 않고, 거리엔 단 한 명도 지나다니지 않았습니다. 가마치 통닭과 마라탕집 정도만 문을 연 채, 나머지 상점들은 모두 셔터를 내렸습니다. 숙소조차 예약하지 않은 상태로 도착했지만, 무인텔 스타일의 숙박시설을 5만 원대에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산청군청 앞에 주차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청와대 같은 분위기의 군의회 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배달의민족 앱을 검색했을 때 나타난 식당은 겨우 열 개 남짓. 그중 70~80%는 후기가 하나도 없었고, 교촌치킨을 제외하면 유명 프랜차이즈도 거의 없었습니다. 배달 후기가 아예 없는 식당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이 도시가 배달 문화보다는 직접 방문하거나 집에서 해결하는 방식에 익숙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음 날 아침, 산청 시장을 찾았지만 상설 시장과 5일장이 함께 운영된다는 안내판과 달리 대부분의 점포가 문을 닫았습니다. 시장 골목 안에는 손님도, 상인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칼국수와 손두부찌개 전문점에서 점심을 해결했는데, 고추 맛이 강하게 나는 국수는 예상 외로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산청 초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맞은 역사 깊은 학교였지만, 특이하게도 정문이 없었습니다. 전교생은 약 250명으로, 산청군 내 다른 학교들의 전교생을 모두 합친 것만큼 많은 규모였습니다. 학교 앞에는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영어 교실이 있어 초등학생들이 하교 후 바로 학원으로 향하는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시골이라고 해서 교육열이 낮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산청군 법원은 평일임에도 문이 잠겨 있었고,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에만 잠시 공무원들과 어르신들이 무리 지어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을 뿐입니다. 이런 풍경은 산청군이 '활동하는 낮'과 '비워지는 밤'이 극명하게 구분되는 도시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여행자에게는 '할 게 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이 조용함이 편안한 일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동의보감촌과 산청의 전략적 정체성
산청군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동의보감촌은 예상 외로 규모가 컸습니다. 동이문을 지나 들어서니 으리으리한 건물들과 한옥 스타일의 식당, 약초 판매점들이 즐비했습니다. 불로문이라는 상징적인 문 앞에는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고, 산청 사람들이 거의 다 여기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동의보감촌이 허준 선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허준이 여기서 활동했거나 태어났거나 죽은 것이 아니라, 산청이 버섯과 약초로 유명하기 때문에 허준의 동의보감과 연결해 테마파크를 조성한 것입니다. 규모는 컸고, 동의보감 한의원에서는 공진단 만들기 체험도 진행되었습니다. 공진단 세 개에 3만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산청군의 모습은 군청 소재지 치고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 선명하게 보였을 텐데, 구름이 많아 아쉬웠습니다. 사슴 목장에서는 흰 사슴을 포함한 다양한 사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흰 사슴은 멜라닌 색소 부족으로 인한 유전병을 가진 개체로, 일반 사슴과는 확연히 다른 외모를 자랑했습니다.
물음교라는 이름의 출렁다리가 있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다리 중간까지 한 번에 미끄러질 수 있을 정도로 경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의보감촌은 산청군이 자신의 정체성을 '약초와 웰니스'로 전략적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관광 콘텐츠로 확장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설이 실제로 지역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또 지역 주민들의 삶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궁금한 지점입니다.
합천군, 영상 테마파크와 청와대 재현
산청군에서 합천군까지는 직선거리로는 가깝지만, 산으로 막혀 있어 빙 둘러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해야 했습니다. 합천군에 도착하니 산청군과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전라남도 강진군과 비슷하게 널찍하고, 군청이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인구는 약 3만 9천 명으로, 매년 900명씩 자연 감소하는 전형적인 고령화 도시였습니다.
합천군청은 오래된 흰색 건물이었고, 바로 옆에는 제2군청이 따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공휴일임에도 2층에는 불이 켜져 있어 공무원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합천군에도 두 명 이상만 주문 가능한 식당이 많아,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이었습니다. 롯데리아에서 한우 불고기버거를 포장해 숙소로 가져왔고, 고기비빔국수는 생각보다 매웠지만 맛있었습니다.
합천시네마는 군에서 운영하는 작은 영화관으로, 관이 두 개 있고 한 관당 약 60명이 앉을 수 있었습니다. 일반 요금은 6,000원, 청소년·노인·장애인은 5,000원으로 대형 극장보다 훨씬 저렴했습니다. 하지만 방문 당시에는 영화 상영 시간이 아니어서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없었습니다. 합천시네마 앞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도둑들, 변호인, 밀정, 암살 같은 영화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는데, 이 모든 작품이 합천 영상 테마파크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합천 영상 테마파크는 국내 최대 규모로,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배경을 재현한 세트장이었습니다. 주차장이 꽉 찰 정도로 연휴 기간 방문객이 많았고, 기차 내부, 오래된 미용실, 골목, 호텔, 일본풍 건물 등 다양한 세트가 있었습니다. 반도 백화점에서는 옛날 의상을 빌려주어, 많은 사람들이 교복이나 옛날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살던 집을 재현한 공간이었습니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내부 구조까지 세밀하게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언덕 위로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청와대가 나타났습니다. 진짜 청와대의 약 68% 크기로 재현되었으며, 영빈관(춘추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부 구조가 비슷했습니다. 1층 국무회의실에는 의자가 빼곡히 놓여 있었고, 실제 청와대를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합천군에서 또 하나 유명한 곳은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였습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은 일주일에 한 번만 일반에 공개되고, 사전 예약이 필수였기 때문에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영상 테마파크에서 예상치 못한 재미를 발견했고, 이것만으로도 합천군 방문은 충분히 가치 있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 주는 진솔한 기록
산청군과 합천군을 방문하기 전까지, 이 두 도시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유튜브에 검색해도 산불, 홍수 같은 재난 뉴스만 나왔고, 무엇이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직접 방문해 보니, 동의보감촌, 합천 영상 테마파크, 청와대 세트장 같은 예상 밖의 콘텐츠가 있었습니다. 이 여행이 인생에서 마지막 산청군·합천군 방문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서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사용자의 비평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여행은 '재미'의 기준을 볼거리·놀거리 중심으로만 평가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솔직함이 오히려 도시와 여행자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수도권 중심적 시각을 반성하게 만듭니다. 밤에 꺼지는 도시는 여행자에게는 '할 게 없는' 곳이지만, 주민들에게는 '편안한 일상'일 수 있습니다. 이 지역 청년들이 정말 모두 떠나는지,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동의보감촌과 영상 테마파크가 실제 지역 경제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는 여전히 궁금한 질문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이 여행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서 더 선명해지는 곳'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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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WVDE5jwyBM